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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저강도 혁명'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대한민국 간판 내리고 소비에트체제 등장?


"예수 이래 평등한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19세기에 그 꿈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얻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카스트로, 호찌민,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한때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를 자칭했다. 러셀과 사르트르에서 마르쿠제 등 학자와, 피카소와 고리키에서 조지 오웰, 앙드레 지드 등 작가가 공산주의를 찬미하거나 비판했다."


대한민국 간판 내리고 소비에트체제 등장?

역사가 로버트 서비스(옥스포드대 교수)의 저술 <코뮤니스트>(교양인 펴냄)에 나오는 얘기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지적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었지만, 막상 실현되었을 때는 가장 파괴적이었다." <코뮤니스트>는 그런 놀라운 역설의 드라마를 800쪽 분량에 펼쳐 보인다.

희한한 건 한때 위력적이던 공산주의 이념이 1989~91년 정말 느닷없이 붕괴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세대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음달 7일이면 공산혁명의 진원지인 러시아혁명이 꼭 100돌을 맞는다. 한 국내 신문은 러시아 혁명 100돌이 블라드미르 푸틴 정부 차원의 공식성명이나 기념식이 없이 썰렁하게 지나갈 것이라고 현지 표정을 전했다.

대한민국 간판 내리고 소비에트체제 등장?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했던 이념이 가장 추악하게 타락했고, 그게 지금 어떻게 초라하게 기억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그럼 공산혁명의 실체란 뭘까? 차르가 다스리던 옛 러시아라는 자궁에서 배태된 역사 속의 사생아일까? 그래서 역사의 유산일 뿐인가. 꼭 그것만은 아니다.

지금 한국에 실로 전에 없던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며, 그게 체제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건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렇다면 형태를 달리한 공산혁명의 재래(再來)가 걱정되는 게 지금의 두려운 상황이다. 이게 무얼 뜻하는가? 최악의 경우 역사에서 사라졌던 소비에트 체제가 21세기 초(超)산업국가 한국에서 등장할 수 있다는 기막힌 역설이다.

이런 역사의 퇴행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구는 물을 것이다. 언론이 그걸 '즐거운 시민혁명' 혹은 명예혁명이라고 찬양하고 있고 일부 지식인 정도가 약간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수준인데, 왜 당신만 그러느냐? 그건 지금 상황을 통상적인 정치싸움의 한 국면으로 보느냐, 공산혁명 등장의 전단계로 보느냐의 차이인데, 이런 편차는 이유가 있다.

촛불시위 1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흐름이 '저강도 혁명(low intensity revolution)'이란 구조이기 때문이다. 강도가 높지 않고,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처 눈치를 못 채는 것이다.


저강도 혁명은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war)이란 개념과 일단 유사하다. 즉 저강도 전쟁은 전면전의 양상과 달리 제한된 곳에서 적은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 테러나 요인 암살 등 국지적인 형태로 이뤄진다. 때문에 사상자가 대량 발생하지도 않으며, 일반인들에겐 쉬 체감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 변화가 꼭 그러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는 지금 '느슨한 형태의 내전'이 진행 중이며, 그게 실제 내용면에선 '은폐된 혁명'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내전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와해시키려는 세력과 수호하려는 세력 간에 전개됐다. 꼭 1년 전인 2016년 10월 하순부터 2017년 3월 초순까지 전개된 촛불집회 대 태극기집회의 대결도 이 두 세력 간에 전개된 내전의 한 양상이었다.

당시 정치학자 양동안 교수가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은 느슨한 내전의 첫 전투이며, 두 번째 전투가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였다. 이 전투에서 대승한 저들은 적폐청산으로 분위기를 압도한 뒤 입법 투쟁(헌법 및 법률 개정 투쟁)과 대북 정책을 둘러싼 마지막 전투에서 궁극의 승리를 노리고 있다.

그게 맞는 소리다. 눈 밝은 사람들은 5.9대선이 체제전쟁이라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체제변혁-민중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을 했는데, 그게 지금 우리 현실이 됐다. 그리고 어제(26일) 언론인 류근일이 조선일보 지면에 의미심장한 칼럼을 선보였다. 어어 하는 순간에 대한민국 간판이 내려지고 있으며 민중민주주의, 코뮌주의로 달려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느슨한 내전'은 아직도 진행중

"새 원전(原電) 사업 백지화, 노동시장 개혁 없는 최저임금 인상 등 전례 없는 뒤집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뒤집기는 밑으로부터 변혁과 위로부터 변혁을 거치고 있다…운동권 권력은 중앙부처별로 위원회라는 걸 두었다. 자칭 진보 인물들로 채운 위원회다. 일테면 행안부 산하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 노조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까지 주문했다. 그건 갈 데까지 간 막장이다."('다른 나라 대한민국')

부처별 위원회란 것은 이중 권력의 등장을 뜻한다. 기존 체제의 질서를 상징하는 표면 권력을 핫바지로 만들고 숨은 실세인 이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인데, 그게 공산주의 체제의 전형이 아니던가? 탈원전에 동원됐던 공론화위원회 등 숙의(熟議) 민주주의 제도 도입이란 것도 꼭 그렇다.

숙의 민주주의란 1970년대 유럽의 신좌파 즉 뉴 레프트가 선보였던 장치다. 의회 등 대의 민주주의의 기성질서를 형해화하기 위해 저들이 고안해낸 신의 한 수였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무런 제지 없이 그런 게 지배하고 있다. 뿐인가? 지금 벌어지는 적폐 청산, 보수 불태우기란 광기는 걷잡을 수 없으며, 사실상의 일당 독재 체제를 방불케 한다.

KBS-MBC 공영방송 이사 찍어내기란 노골적인 인적 청산인데, 그건 공산체제의 주특기인 숙청과 어쩌면 그렇게 닮은꼴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민중은 이걸 진보요, 개혁이라고 믿는 눈치다. 민노총 소속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홍위병'이라 자처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뭘 아는 이들은 모두 쉬쉬하며 말을 아끼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그런 게 바로 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억눌린 일상이고 심리였다며 <속삭이는 사회 The Whisperers>란 이름의 단행본을 펴냈는데, 이 또한 한국사회가 '저강도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다. 이 와중에 약간 괜찮은 지식인들이 코미디를 한다.

"현 정부는 촛불정신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서울대 교수 송호근)는 식의 하나마나한 소리가 그것인데, 그건 저강도 혁명의 본질을 제대로 못 보니까 그러는 것이다. 두렵다. 실은 내가 만들어낸 저널리스틱한 용어인 '저강도 혁명'란 변형된 형태의 공산혁명이란 뜻이고, 조만간 더 무서운 상황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이런 나의 의견 개진을 좀 불편하게 들을 당국자나 시민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견해는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고 논리 비약도 일부 있겠지만, 더 건강한 대한민국,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론장에서 못할 말은 없다. 많은 의견을 개진해주시길 바란다.

[이 칼럼은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의 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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