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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북한 지하교인에 대한 탄압 실태

감옥에 갇혀있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풀려나게 하소서

 

 

 

 

 

 

 

 

 

 

 

 

 

김 흥 광 대표

NK복음통일방송

 

교회에 가면 지인들은 북한에서 온 나에게 종종 이렇게 물어본다. 북한에는 정말 지하교인이 있는가고? 나는 서슴없이 ‘그렇다’ 라고 단언한다. 의아해 하는 그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물론 북한은 그 어떤 종교도 허용하지 않는 유례없는 종교 탄압 국가이다. 그럼에도 북한에는 기독교나 다른 종교 대신 김일성교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북한은 김일성을 신으로 내세우고 김일성의 어록을 경전으로 하여 남한과 세계를 김일성교화 하기 위하여 지난 70년 동안 주민들을 교화하였고, 오늘날에는 그 극치에 이르러 인간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김일성교 외에는 어떤 종교도 신앙도 허용되지 않기에, 북한주민들 중에 평양 부흥기 때부터 기독교나 타종교를 믿어 온 사람들은 오늘날에는 다 숨어서 개인적으로, 비밀리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나 제3국에서 기독교와 타종교에 접촉했던 사람들이 강제 북송 당했거나 귀국한 이후에도 여전히 은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적잖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북한주민들의 신앙생활은 정말로 순결하고, 순교를 각오한 비장한 신앙생활이며,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지구촌의 그 어느 종교인들보다 신앙심은 깊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종교탄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저의 장인은 함경남도 보위부 부부장이었다. 특히 장인이 맡은 업무는 중요하게 반종파투쟁에 대한 지휘와 종교인 또는 종교적 색채를 띤 위험분자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지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장인의 서류를 컴퓨터로 타자하여 여러 부 복사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그걸 도와주면서 나는 함경남도 홍원군 읍에서 사는 한 북한주민이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김정일에게 청원편지를 쓴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편지는 원래 김정일에게 바로 갈 수는 없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정일이나 노동당 중앙위 앞으로 보내는 편지들을 사전에 다 뜯어보고 문제가 없는 신소(伸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함. 편집자 주)나 청원만 중앙당 신소처리실에 보낸다. 결국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이 청원사건을 반당종교행위로 규정하고 그를 가족, 친척과 함께 당장에 잡아들여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끌어가는 작전을 하였다. 내가 여러 부 복사한 서류는 그 작전에 대한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에는 본인의 사상적 동향과 종교심취 정황, 그가 영향을 미친 가족과 친척, 지인들에 대한 조사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서류를 잘 만들어 주고 나서 장인에게 종교가 어떻게 되어 생겨났고 왜 아직도 당에서 그토록 엄하게 다스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장인이 그 때 했던 이야기는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북한은 해방 직후 인민공화국이 들어서서부터 종교를 바로 탄압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였다. 전쟁 직후까지는 종교에 대한 탄압이 다소 느슨하였다. 그것은 김일성의 부모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민공화국을 이제 막 세우다보니 가급적이면 대중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하였다. 군경을 동원하여 종교를 원천적으로 없애버릴 수는 있었지만,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여 사람들을 무턱대고 감옥에 잡아들이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신생 공화국에 대한 대중적 기반은 모래성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쳐 없애고 싶었지만 종교탄압의 시기는 봐서 결정하기로 하고 김일성은 우선적으로 과도한 종교행사를 제한하고 종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만 치중하였고 교회는 그대로 존치하도록 하였다.

 

종교의 존치를 두고 삼고초려하고 있던 김일성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북한의 지명도 높은 목사와 신부를 비롯한 거물 종교인들이 대거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들과 함께 많은 성도들이 합류하여 북한으로부터 남한으로의 종교인 대이동이 있었다. 더욱이 북한에 잔류하거나 감옥에 잡혀있던 기독교 핵심 인사들이 북한이 일으킨 6.25동란으로 인해 집단 월남하면서 북한의 기독교 아성이 삽시에 무너졌다. 김일성은 종교사회의 이러한 실상을 빤히 알고 있었기에 소련 종주국으로부터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전후에 실시한 첫 번째 방침이 바로 전후 복구건설을 할 때 파괴된 교회들은 다시 세우지 못하도록 하였고, 또 기적적으로 파괴되지 않은 교회와 관련 시설들은 다른 용도로 바꾸어 버리거나, 아니면 전부 허물어서 새로운 건물을 들여세웠다. 교회라는 하나님의 처소를 없애버림으로써 1950년 말까지 주님이 역사하시는 표적을 말끔히 쓸어버린 것이다. 그 뒤로는 월남하지 않은 종교인들과 관계자들을 일일이 불러내어 다시는 예수쟁이로 살지 않겠다는 신앙생활 포기를 강요하였다. 생사를 가르는 전향 강요 앞에서 끌려 나온 교인들은 세 부류로 갈라졌다고 한다. 진짜 전향한 사람, 거짓으로 전향한 사람, 끝까지 전향을 거부한 사람이 그것이다. 진짜든 거짓이든 전향한 사람들은 다시는 예수쟁이로 살지 않겠다는 서약과 함께 십자가를 부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고도 그들의 전향이 의심되어 진짜로 예수쟁이를 그만두었는지 이웃과 지인들을 통해서 낱낱이 감시하였다고 한다. 식전기도나 성경소지 및 성경읽기와 같은 신앙생활 증거가 나타났을 때에는 가차 없이 보위부에 불러다가 죽도록 패대고 나중에는 모두 정치범수용소에 끌어갔다고 한다.

 

북한이 1960년부터 전격적으로 김일성 우상화인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돌입하면서 종교는 완전히 북한의 첫째가는 혁명의 원수로 치부되었다. 종교생활은 결국 수령을 믿지 않고 헛것을 믿으려는 심히 불경스러운 미신행위로 규정되었고, 누구든지 종교행위에 연루되거나 종교 서적을 소지하거나 종교에 대한 담화를 하는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부칙에 따라서 가차 없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1960년이 바로 북한에서 기독교와 기타 종교를 원천적으로 없애버린 원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지하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일생을 보위부에서 재직하면서 김일성에 도전한 종파분자들과 종교인들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해온 장인은 자신이 만났던 종교인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한 사람은 정말로 인간이 아닌 듯싶어 그를 떠올릴 때마다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고 하였다.

 

1997년에 중국 사사여행(공적인 일이 아닌 사사로운 일로 여행함. 편집자 주)을 갔다가 중국 흑룡 강성 하얼빈시의 어느 교회에서 남한의 목사한테서 신앙을 전도 받아 교인이 된 김모 씨는 대흥무역관리국 함경남도 관리국의 중견 실무자였다. 그런데 그가 없는 동안 불시에 사무실을 옮기면서 그의 책이 발견되었고, 그게 바로 성경이었다고 한다.

 

장인도 이 사건을 취급하면서 처음으로 성경을 보게 되었는데, 좋은 말이 참 많더라고 평가를 하였다. 그런데 그 책이 발각된 것을 알고 난 김 씨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 보위원들이 잡으러 오기를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위부 지하 감방에서 그는 500촉짜리 전등이 코앞을 비추고, 손끝을 참대 송곳으로 하도 찔러대어 감각조차 없어졌고, 너무도 두들겨 맞아 제 살 색깔이 없이 온 몸이 푸르딩딩한 상태에서 최종 조사를 받기 위해 장인 앞에 끌려왔는 데, 그 때 이미 그는 산 사람의 형색이 아니었다고 한다. 조사기록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 “너는 인민의 원수, 당의 원수가 되었으니 가족과 함께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되었다”고 선포하면서 다른 의견이 있는가고 물어보았는데, 그가 갑자기 “내가 이 자리에서 바로 죽임을 당한다 해도 내가 만났던 예수님을 어찌 없다고 하겠는가? 그 분은 너희들은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머리가 있어도 그려볼 수 없으며, 나를 괴롭히고 고통을 준 것만큼 이제 너희 사탄의 무리들을 다 지옥에 처넣을 것”이라고 하면서 추상같은 고함을 지르고는 그 자리에서 운명하였다고 한다.

 

장인의 말씀에 의하면, 보위부에 잡혀 온 사람들은 직위여하를 불문하고 처음 잡혀 온 순간 벌써 반은 정신이 나가 있고, 그리 큰 고문이 아니더라도 보위부라는 두려움에서인지 전기침 정도만 몇 번 들이대도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며 모든 걸 자백을 하는데, 이 사람은 그게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자기를 지키는 경비원 청년들에게 그들이 알아듣든 말든, 또 입을 벌린다고 더 혹독한 뭇매를 당하면서도 그들에게 ‘너희를 창조하신 것은 너희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교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음 앞에서도 오직 예수님을 믿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의연한 믿음과 신앙은 그것을 목격한 교형리(교수형을 집행하는 사람. 편집 자 주)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고, 그러한 신앙인들이 지니고 있는 알 수 없는 큰 힘을 느끼게 되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신에 대한 체험으로 남는 일들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독교인들을 북한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국에 와서 새로운 세계를 전도해주고 게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노자까지 듬뿍 챙겨주는 목사님들 앞에서 가졌던 신앙은 그렇게 강건한 것이 아니어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면서 바로 성경책을 버린다든지, 또 무사히 귀국해서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노예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도 지독하게 배고프고 희망과 미래가 없는 노예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쌀이나 돈도 아니고 영원한 행복이 있는 천국에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신앙생활에 대하여 종종 생각이 나고, 그동안 탕자가 되었던 자신들을 발견하고서는 당황하여 어떤 형식으로든지 예수님을 떠올리고, 예수님과의 약속 즉 믿음의 약속을 지키려는 어떠한 노력이라도 하게 되더라는 것이 탈북한 지하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런즉 하나님의 복음이란 도저히 육체로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강력한 생활력이 있어, 한 번 접하고 나서는 설명할 수 없는 능력으로 믿는 자에게 구원과 생명력을 준다는 사실 앞에서 탈북한 지하교인들은 숭엄함을 느끼고 있다.

 

북한의 종교탄압은 어느 정도일까?

 

저의 장인의 체험담과 탈북한 북한 지하교인들의 증언을 들어본 독자들은 아마도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그토록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지하에서나마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혹시 북한의 종교 탄압이 겉으로는 혹독해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가혹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께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북한만큼 종교탄압이 전방위적이고 총체적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조금 언급하였지만 장인이 알려준 바와 같이 북한의 노동당과 국가 보위성의 반종교 부서들은 서로 협력하여 종교가 싹트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와 강도로 이뤄진다. 그 첫째가 바로 치밀한 감시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가보위성은 간첩과 내부 반동분자들을 잡아내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임무가 북한 내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침습하지 못하도록 전방위적으로 감시하고 발견 즉시 초토화하여 이른바 종교를 맹아시기에 원천 분쇄해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국가보위성 9국(반종파투쟁국) 산하에 2처(종교투쟁과)를 설치하고 국가보위성으로부터 각 도, 시, 군 보위성에 직할적인 반종교 감시 및 투쟁 지휘체계를 가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종교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즉시 각급 보위부의 최고 책임자인 부장에게 직보되며 부장은 이를 낱낱이 조사하여 상급 보위기관을 거쳐 당중앙위원회 조직 지도부까지 지체 없이 보고하여 김정은의 재가를 얻어 다시는 그런 온상이 살아나지 못하게 초토화한다.

 

‘초토화’라는 말은 가을걷이를 끝낸 논과 밭들에서 겨우내 해충이 살아 남지 못하게 불을 질러 모조리 태워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바로 기독교인 발견이나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것,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가족이나 지인들까지 모조리 초토화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강제 북송되어 북한보위부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한국행에 성공한 탈북민들에게 어떻게 보위부에 잡혀갔다가 살아서 나올 수 있었는가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해준다. 탈북한 죄를 가지고서는 최소 6개월부터 몇 년까지 벼라별 옥고를 치르더라도 살아나올 수 있지만, 남한 행을 기도했거나 특히 교회와 접촉한 기록이 붙어있는 탈북자들은 절대로 살아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탈북하여 중국에서 교회와 접촉하고도 교회에 간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 요행히 살아나올 수 있지만, 함께 교회에 갔던 다른 사람들이 보위부에 잡혀와 조사과정에 그 사실을 불어버리면 그 때는 정치범수용소 행을 피할 수 없다. 정치범수용소는 가족은 몰라도 본인이 살아나오는 경우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나오지 못하고 그 곳의 무주고혼 (無主孤魂:거두어 주는 연고자(緣故者)가 없어 떠돌아 다니는 외로운 혼령(魂靈)이란 뜻. 편집자 주)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노동당과 국가보위부는 북한 주민들 속에 가로 세로 교차해서 정보원들을 두고 주민들을 서로 감시하도록 감시망을 조직 운영하고 있는데, 상호 감시 내용 중 제일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 바로, 김정은과 당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 토로, 그리고 종교행위 의심자를 색출하는 것이다. 어떤 집이나 산, 그리고 은밀한 곳에 사람들이 자주 모이거나, 손을 합장하고 중얼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 천당 소리를 하는 자, 하나님과 예수라는 용어를 쓰는 자, 그리고 이상한 책을 몰래 보는 자 등이 바로 감시의 첫째가는 대상이다.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즉시 보위원과 당 비서에게 보고하면 그는 충성분자로 평가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행정상의 편의도 더러 봐주기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밀고하도록 격려를 받게 된다.

 

그러니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은밀하게, 그리고 숨죽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신앙생활은 자유롭게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남한의 교인들은 절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목숨을 내건 신앙생활이고, 진짜로 주님에게 생명도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긴, 문자 그대로 절대적 믿음의 순간들이고, 믿음의 삶들이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맺으면서 남한의 교회와 세계의 기독교 사회에 호소한다. 북한사람들이 제발 하나님을 마음대로 믿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시고 적은 힘이라도 보태달라고… 북한의 종교 자유화는 핵문제도, 인권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과제라고…

 

[이 글은 월간 JESUS ARMY 2019년 8월호(기획특집 '복음통일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교회언론회 "국가 안보 위해 지소미아 복원해야"
지난 달 22일 정부가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은 북핵 위협에 대비한 한미일 3국간의 공조와 협력을 깨뜨리고, 국가 안보와 경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는 3일 논평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는 GP 파괴보다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는 11월 종료되는 지소미아를 복원하여 국가 안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도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조치를 속히 취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논평 전문(全文). 국가안보를위해서는‘지소미아’복원이필요하다 일본도‘화이트리스트’한국제외를재고하여야한다 우리정부는지난달22일지소미아협정(GSOMIA-대한민국정부와일본국정부간의군사비밀정보의보호에관한협정)을종료하는결정을내렸다.우리정부는‘양국간민감한군사정보교류를목적으로체결한협정을지속하는것이우리의국익에부합하지않다’는이유때문이다. 이는일본정부가경제보복조치(백색국가제외)에대한철회요구에응하지않았다는것과,내년국내총선을앞두고‘반일’(反日)‘극일’(克日)을통하여,정치적인유리한국면을얻겠다는것으로보는시각이지배적이다. 그러나우리의전통적인우방인미국과일본의입장은다르다.미국은‘지소미아는북한
미국국적 한국인은 석방, 우리국민 억류는 우리민족끼리?
전국 50여개 지역에서 열리는 통일광장기도회가 8.15 광복 74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3개 도시에서 연합기도회로 열렸다. 통일광장기도연합은 8월 12일(월) 저녁 7시 30분에 서울과 대전, 울산 등에서 '8.15 광복 74주년 기념 연합통일광장기도회(이하 연합통일광장기도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수도권과 강원지역은 서울역 광장에서, 충청·호남권은 대전역 광장에서, 영남권은 울산 태화교에서 통일광장기도회 회원들 1000여 명이 모여 함께 북한구원과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이번 연합통일광장기도회는 특별히 북한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억압당하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문제를 전 세계에 알릴뿐만 아니라 복음통일의 첫 단계가 올해 반드시 열리도록 다음과 같은 기도제목으로 합심 기도했다. 1. 북한에 억류된 남한선교사 6명 모두 풀려나게 하소서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고현철, 김원호, 함진우) 2. 정치범 수용소가 폐쇄되게 하소서. 갇혀있는 성도들과 주민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옵소서 3. 감옥에 갇혀있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풀려나게 하소서 4. 신앙의 자유가 주어짐으로 자유롭게 예배드리며 전도,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게 하소서 5. 우상화 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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