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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독인의 낙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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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 목사 | 생명운동연합 사무총장

 

1. 낙태의 정의


흔히 낙태라고 부르는 ‘인공 임신 중절’은 잉태된 태아를 자연 분만기에 앞서서 태모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생명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2. 낙태의 역사


낙태는 인류역사의 여명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낙태와 유아살해를 상당히 허용하였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낙태를 허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남아는 임신 40일 이후, 여아는 90일 이후 태아의 생명(영혼)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는 도덕적 구분이 아니고 형상학적인 구분으로 이것이 현재 산부인과학에서 임신을 3기(초기·중기·말기)로 구분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의학이 발전한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낙태시술이 극히 위험했기 때문에 모든 국가들이 이를 법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자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후진국에서는 국가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길목에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으로 지향하는 가족의 변화가 세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많은 국가들이 낙태 시술을 엄격히 규제하던 법률을 개정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앞장선 나라가 소련(1920.11.8. 세계 최초 낙태시술 합법화)과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서방세계에서는 일본이 1958년 우생보호법이란 미명하에 낙태를 실질적으로 자유화하였다. 미국은 1968년 이후 주(州)에 따라 자유화 내지는 규제 완화 또는 합법화했다.

 

한국은 1962년 시작된 가족계획사업이 경제발전의 필수요건으로 여겨졌고, 1973년 공표된 모자 보건법에서 인공유산을 합법화하게 된다. 비록 형법에는 낙태죄를 명시하고 있었지만 모자보건법 시행으로 인해 거의 모든 경우에 낙태가 허용되었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인구증가율을 낮추기 위해 1가구 2자녀(혹은 1자녀) 정책을 펴서 결국 낙태를 유도했고, 보건사회부는 미성년자나 영세민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도 낙태 수술을 지원해 주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합헌을 선고한지 6년 만이다. 이제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낙태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태죄 조항은 자동 폐지된다.


3.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인문학적 견해

 

낙태 문제는 “언제부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집약될 수 있다. 그러면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을 사용하여 철학적인 사고를 종합하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유전학파는 사람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특성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결합할 때 형성된다고 본다. 이것은 유전자와 염색체가 머리나 눈의 색깔에서부터 인체의 화학적 성질을 통제하는 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발달학파는 유전자형만으로는 인간의 특성이 충분하게 설명될 수 없다고 보고, 태아를 인격체라고 부르기 전에 좀 더 생리학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뇌파를 보이기 시작한다든지, 태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든지 등, 고대 철학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는 학파이다. 그러나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의 생리적 기능이 발달되어야 인간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회결정학파는 사람됨이라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요인들을 중심으로 접근하거나, 사회가 인격체로서의 사람을 정의하도록 논증함으로써 접근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태아의 가치를 본래부터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외부에서 얻어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태아의 삶의 가치를 사회가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은 이와 같은 철학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 생명의 시작을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해 산통을 시작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의학계는 대답을 가지고 있을까? 의학은 낙태 문제에 관하여 가장 명백하게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태모의 뱃속에 있는 존재에 대해 인격을 부여할 수 없는 세포덩어리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인간 생명인지를 과학적으로 답변해 준다면 낙태를 어떤 행위로 규정할 것인지가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1940년대만 해도 태아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규명하는 태상학 또는 발생학, 태아학이 없었다. 그래서 ‘태아는 인간인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철학이나 신앙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태아가 유일하고 독특한 별개의 인간이란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난자의 만남으로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뚜렷한 인간으로서의 수정아가 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은 돼지도 닭도 아니오, 사과나 오렌지도 아니다. 오직 인간일 뿐이다. 물론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다른 동물이 있지만 문제는 염색체의 수가 아니라 그 염색체 형질의 정체성이다.

 

수정아는 인간의 모든 형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향후 죽을 때까지 인간이 되기 위하여 더할 것이나 뺄 것이 없다. 단지 그 크기만을 키워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모는 태아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할 뿐이다. 태아의 심장과 태모의 심장이, 태아의 영혼과 태모의 영혼이 태아가 다 자라서 태모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공존하는 것이지 태아가 태모의 단순한 세포덩어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의사들은 어느 순간부터 생명이라고 할까? 의사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수정의 순간부터 인간 생명에 대해 지고의 존경심을 유지할 것이며, 어떤 위협 아래서도 인간성에 위배되게 나의 의학 지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학협회는 “인간의 생명은 수태에서 시작하여 자궁 안에서든 밖에서든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은 만인이 아는 과학적인 사실이다”라고 했다.

 

4. 생명의 기원에 관한 성경적 견해


그렇다면 성경은 언제부터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다고 하는지 살펴보자.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았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인간은 진화론자의 주장처럼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힘에 의해서 생존되어 온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정교하고 거룩한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그분과 교제하며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은 수정 순간부터 완전한 인간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욥 10:8-12)

 

어떤 사람들은 태아를 잠재적인 생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수정 순간부터 완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수정 순간부터 영혼과 인격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완전한 인격체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모태에 있는 태아에 대해 약속을 주시는 기사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태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준다. 세례요한에 대해 주신 예언을 보면,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1:15)” 요한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태아가 모체에 있을 때에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의사인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1:39-44)을 보면 천사의 수태 고지 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6개월 된 태아(세례요한)가 뛰놀았다고 하는데, 요한이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 때문이라고 해석된다(눅1:44). 이때 예수님은 접합체(의학용어, 나는 ‘수정아’라 부름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로서 아직 어머니 자궁에 착상하지도 않은 아주 작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이며 구세주이다. 의사 누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태아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일까?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 139:13-16)

 

이 매혹적인 시는 출생 이전의 태아의 발달에 대한 성경의 가장 완벽한 설명을 담고 있다. 태모의 뱃속에서 태아를 조직하실 때 마치 베틀에서 베를 짜듯이 인간의 기관을 만드셨다. 이 시는 인간의 기본 골격인 힘살, 근육, 혈관 그리고 조직으로 차례차례 짜 맞추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가 창조된 과정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오한 지식과 관심이 신묘막측하다고 감탄한다.

 

성경은 낙태를 무엇이라고 규정하는가? 한마디로 성경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3, 5:17)”고 한다. 즉 태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를 낙태하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어기는 것이요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성경은 태모의 뱃속에 있는 태아를 세포덩어리로 여기지 않고 우리 성인과 같은 인간으로 간주한다. 즉 태아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 충만을 받는 완전한 인격적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낙태는 살인이다.

 

5. 왜 기독교인은 낙태를 반대하는가?


낙태는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거역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것으로 반기독교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 가정, 교회, 국가 공동체의 영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반사회적이기 때문이다. 낙태는 생명경시 풍조를 만연시켜 사회 범죄화의 제1원인이 될 수 있다.


태아는 낙태로 인해 삶의 권리를 영원히 박탈당하고 임산부는 정신적, 육체적, 영적 후유증으로 고통당한다. 의사는 태아를 살해했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결국 가정과 사회, 국가, 교회 모두가 희생자가 된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 24:11-12)

 

하나님은 이 시대에 낙태란 강도를 만난 태아의 아버지이시다. 태아와 온 인류의 아버지이신 창조의 하나님은 오늘도 낙태로 죽은 태아를 그의 자비하신 손에 올려놓고 눈물을 흘리실 것이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 시대에 가장 작은 자가 태중사람인 태아이다. 이 시대의 가장 작은 자이며 낙태라는 강도를 만난 불쌍한 이웃인 태중사람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을 신앙운동으로 해야 한다.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생명운동’이야 말로 한국교회가 해야 할 마지막 신앙운동이다. 이 땅에 생명문화를 만들고 그 생명을 지키는 일을 교회가 앞장서서 해야 한다.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다. 생명을 멸시하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6.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한 생명운동에 동참하자


낙태문제는 단순히 사회문제나 여성문제나 법률문제가 아닌 그 이상이다. 가장 치열한 영적 싸움이고 생명을 말살하려는 거대한 사단의 음모이다. 마지막 시대에 사단은 태중사람을 그 타겟으로 삼아 하나님의 창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조국교회가 할 일이 많지만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낙태에 대해서 언제까지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 것인가?


한국교회는 이제 일어나야 한다! 낙태로 죽어가는 태중사람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태중사람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봐야 한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태중사람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낙태는 살인이다. 낙태는 살인이다. 낙태는 살인이다.”
“낙태를 멈추라! 낙태를 멈추라! 낙태를 멈추라!”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의 돌들이라도 일으키실 것이다.

 

5만 교회, 700만 성도는 낙태로 죽어가는 100만 명의 태중사람을 가슴에 품고 통곡하며 회개해야 한다. 이미 낙태를 경험한 분들은 이 낙태(살인)에 대해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실제적인 경험은 아니었더라도 그것에 대해 무지했고 무감각 했다면 내게는 책임이 없다고 하지 말고 대제사장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주여! 우리의 피 흘린 죄를 용서하소서!”

 

또한 대한 산부인과의사회 조사에 의하면 일년에 100만 명이나 되는 생명이 낙태로 죽어가고 있다. 이 귀한 어린 생명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자. “생명의 주여! 낙태의 위기에 처한 어린 자녀들을 살려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태아의 인권을 위한 가칭 ‘태아 3법’ 입법운동을 제안한다.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을 폐지하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태아는 민족의 희망이요 나라의 미래이므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호해야 할 때이다.

 

1. 태아 보호법: 이 법은 태아가 태중에서부터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나도록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
2. 태아 인권법: 태아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보호와 관리에 대한 배려로 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국가는 적절한 형법으로 태아의 인권을 지킨다.
3. 태아 차별금지법: 태아는 성별, 연령(수정 순간부터 출생할 때까지),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는다.

 

 

* 김길수
복죽교회 담임목사, 새생명사랑회 대표, 생명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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