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 | 한장총이슬람대책위원장
한동안 대한민국 교과서의 이슬람 편향성에 관련하여 국회에서 세미나도 하고 국민일보를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서 이슈화 한 일이 있다. 그 내용은 주로 교과서의 종교관련 기술의 분량의 불균형과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역사교과서의 종교서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슬람이 46.1%, 불교 19.0%, 천주교 15.5%, 힌두교 10.4%, 개신교 3.0%라고 했다(국민일보 2018.9.12.).
2016년 12월 20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대한민국 종교인구별 통계는 무종교를 표방한 사람들이 56.1%, 기독교가 19.7%, 불교 15.5%, 천주교 7.9% 순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종교에 이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교과서 종교서술에서 46.1%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불균형이며 이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교과서의 종교분야에서 지적되었던 ‘분량 면에서의 불균형’은 2020년 발간된 교육부 검정 ‘중학교 역사 1’ 교과서 6종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참조한 6종 교과서의 종교 관련 대단원의 제목은 일괄적으로 “세계종교의 확산과 지역 문화의 형성”인데, 소단원으로 “불교 및 힌두교 문화의 형성과 확산”, “이슬람문화의 형성과 확산”, “크리스트교 문화의 형성과 확산”으로 구분하였다. 6종 교과서의 종교별 서술 분량을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전 출판된 교과서 보다 분량 면에서는 기독교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온 모든 분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이들의 요구를 듣고 수용해 준 대한민국 교과서 편찬위원회에도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본다면 유대교가 빠진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 대한민국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종교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상황인데, 지학사에서 출판한 교과서는 불교와 힌두교를 합친 것보다 167%, 천재교육에서 출판한 것은 133%나 많이 기술한 것은, 분량 면에서 본다면 심한 불균형으로 지적될 수 있다고 본다.
2020년 현재 세계 종교인구 통계를 보면 기독교가 23억 6800만, 무슬림이 18억 8800만, 힌두교가 11억5200만, 불교가 5억700만이라고 한다(World Religions Ranking-Population Growth by Religion(1800-2100): Global Stats (https:// youtu.be/q3EneZhsM0Y). 하지만 15.5%의 대한민국 인구가 추종하는 불교와 힌두교를 합한 것에, 1%도 채 안 되는 이슬람보다 더 적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최소한 한국의 교과서에는 적절한 배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량이 아니라 그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이슬람은 타끼야(Taqiya)라는 교리가 있어서 이슬람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은 허용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꾸란 2:225, 3:28). 이슬람은 이 교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심지어는 자신들의 경전인 꾸란을 번역하는데도 “의도적인 오역”을 하여 미화시키거나 덜 혐오스럽게 한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교리 상 꾸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지 않도록 금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이슬람의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번역할 때 역자의 의도가 가미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랍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경전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8억 무슬림 중 아랍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22개 국가의 인구를 합하면 약 4억 정도 된다. 나머지 14억 무슬림들은 아랍어를 모른다. 뜻은 몰라도 좋으니 그냥 소리만 익혀서 아 랍어로 읽고 외우라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이다.
실제로 필자는 중국에 가서 아랍어 꾸란을 소리나는 대로 중국어(한자)로 표기하여 읽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손주영 박사가 번역한 한글 꾸란의 부록에 보면 아랍어를 한글로 표기한 꾸란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꾸란을 원어로 읽거나 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랍어에는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아랍어는 두 가지의 “ㅎ”발음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Z, F, V, KH, TH, DH, GH 등의 자음들은 한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모음도 문제지만 자음이 다르면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보고 읽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황당한 이슬람에 대해서, 교과서를 통해 심히 미화된 내용을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주입을 해 놓으면, 어린 학생들은 이슬람에 대해서 매우 호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종교 선택의 자유에 따라 쉽게 이슬람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내용들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메카에 대한 기술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동아출판 67쪽, 천재교육 64쪽)
동아출판 중학교 역사1 교과서 66쪽과 천재교육 64쪽에서는 “6세기 후반부터 아라비아 서부에 있는 메카가 무역 중심지로 떠올랐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문헌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는 이슬람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이슬람의 교리에 의하면 메카는 인류 최초의 성전이 세워진 곳이며 BC 2천 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도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의 카아바 신전의 기초를 놓았다(꾸란2:127)고 주장하고 있다.
메카라는 도시는 8세기(AD 741년)에 문헌 상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터키에 있는 도시였다. 주후 900년까지는 아랍 지도나 비잔틴 지도 혹은 무역지도 어느 곳에서도 메카라는 지명의 도시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결과다.

무슬림 학자들은 무슬림들이 하루 다섯 번씩 하는 기도를 메카 방향으로 정한 것은 주후 624년부터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이슬람 율법에 의해서 그 때부터 지은 모스크는 모두 메카방향으로 지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Dan Gibson이라는 학자가 직접 중동을 방문하여 수백 개의 고대 모스크들을 조사해 보니 주후 706년까지 지어진 모든 모스크들은 하나같이 요르단의 페트라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그 후 메카와 페트라가 혼용되었고 주후 822년부터 모든 모스크가 메카 방향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The Sacred city(2016), Early Islamic Qiblas(2017), Independent Scholars Press, Dan Gibson). 메카가 이슬람학자들의 주장처럼 고대 도시라고 한다면 최소한 사우디아라비아의 23개 박물관 중에 메카의 고대 유물들을 전시하는 곳이 한 군데라도 있는 것이 정상 아닐까?
이슬람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은 거짓
(동아출판 쪽, 금성출판사 69쪽, 비상교육 69쪽)
동아출판 67쪽 : “인간은 알라 앞에 평등하다는 교리를 펴 하층민의 호응을 받았다”
금성출판사 69쪽 : “인간은 평등하므로 알라에게 귀의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비상교육 69쪽 :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며 알라를 믿고 따르면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학사 65쪽 : “평등을 강조하는 교리가 피정복민의 환영을 받아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이슬람에는 보편적 평등사상이 없다. 이슬람 교리에 의하면 무슬림과 비무슬림은 평등하지 않으며,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지 않다. 이슬람 교리에 의하면 무슬림 남자들끼리만 평등하다.
또한 이슬람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거나 알라를 믿고 따르면 천국에 간다는 교리가 없다. 다만 알라를 위하여 싸우다 순교한 사람들은 천국에 아름다운 처녀가 술잔을 들고 시중드는 낙원에 가게 될 것을 가르칠 뿐이며, 평생을 이슬람 율법을 잘 지키고 많은 선행을 했더라도 그가 낙원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샤알라” 즉 알라의 뜻이다. 알라가 원한다면 천국에 갈 것이고 원치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 이슬람의 교리이다. 알라는 인간의 행동에 종속되지 않으며, 알라는 선한 자를 지옥에 보낼 수도 있고 악한 자를 천국에 보낼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도 못 한다면 어떻게 전능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저들의 논리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조차 자신이 장차 어떻게 될지 모르며 다만 자기에게 계시된 대로 경고하는 자일뿐이라고 솔직히 말했다(꾸란 46:9). 그런데 어떻게 알라를 믿고 따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할 수가 있었겠는가?
이슬람이 피정복민들을 강제 개종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
(금성출판사 69쪽, 비상교육 70쪽, 지학사 65쪽, 비상교육 71쪽, 천재교육 65쪽)
금성출판사 69쪽 : “피정복민의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개종하는 사람에게는 인두세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에 신도 수가 계속 늘어났다.”
비상교육 70쪽 : “이슬람 세력은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개종하면 세금을 줄여주었다.”
비상교육 71쪽 : (그림 설명) “이슬람 제국은 말과 낙타를 이용한 기동력과 종교적 관용정책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지학사 65쪽 : “피정복민은 이전의 페르시아나 비잔티움 제국이 거두던 세금보다 부담이 적어 피정복민은 오히려 이슬람 세력의 통치를 환영하기도 하였다. 평등을 강조하는 교리가 피정복민의 환영을 받아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천재교육 65쪽 : “이슬람에서는 강제 개종을 금하고 있다.” (정수일 책 인용)
피정복민에게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개종하는 사람에게는 인두세를 면제해 주었다는 내용은 자체모순이 있다. 사실은 개종하지 않은 사람은 죽이지 않는 대가로 인두세(Jizya)라는 엄청난 세금을 매겼고 세금을 낼 때도 수치와 모욕을 동반했으며, 무거운 세금을 낸 사람들은 딤미(Dhimmi)라는 신분의 2등 시민으로 많은 제약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무슬림들에게는 이런 세금을 받지 않았다. 이는 돈으로 이슬람을 강요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에는 종교적 관용정책이 없었다. 꾸란은 비무슬림들을 사악한 짐승(꾸란8:55)이라고 가르치며, 꾸란과 하디스는 비무슬림들은 죽이라고 했다(꾸란9:5, 꾸란47:4).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도 자신의 사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다고 두 딸(루까이야, 움 쿨숨)을 이혼시켰는 데 어떻게 종교적 관용정책을 말할 수 있는가?
이슬람은 시작부터 칼로 강제 개종을 요구하였다. 인권헌장을 존중하는 현대에서도 이슬람 학자들은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배교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는 개인의 종교선택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를 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양의 가죽을 쓴 늑대처럼 지 금도 교실에서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서 어린 학생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은 학생들의 장래의 행복을 위해서 옳은 일이 아니다.
* 이만석
예장 통합 총회 파송 선교사로 20년간 이란에서 사역하다가 비자 연장이 거부되어 귀국하여 한국에서 이란인 교회를 설립하여 섬기고 있으며 한장총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교연 이슬람 대책연구원장, 예장통합 총회 이슬람대책위 전문위원, 무슬림선교훈련원장, 한국이란인교회 담임목사 등으로 섬기면서 한국교회에 이슬람의 실체를 알리고 있다.